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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예술 속에서 바라보는 제주 4.3 사건, 정리해 보자.

by 초이아트1970 2025. 4. 7.

제주 4.3 사건은 해방 직후 혼란한 정세 속에서 발생한 비극적인 사건으로, 약 6년간 이어진 국가 폭력에 의해 수 많은 제주도민들이 안타깝게 희생당한 역사적 사건입니다. 하지만, 오랜 시간동안 이 사건은 '금기'로 여겨지며, 공식적인 기록과 기억 속에서 철저하게 배제되었습니다. 언론 보도는 물론이고 교육, 정치, 역사적 측면에서 조차 침묵을 강요당했던 이 사건은, 문학과 예술이라는 표현 매체를 통해 조금씩 그 진실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억눌린 기억을 복원하고, 억울한 죽음을 애도하며 인간의 존엄성을 되찾기 위한 노력 속에서 문학과 예술은 중요한 역할을 해 왔습니다. 이에 있어서, 제주 4.3 사건이 문학과 예술 속에서 어떻게 표현 되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되었는지 살펴 보고자 합니다.

제주4.3문화제 출품작 (화가 강요배)
<출처> 제주 4.3 문화제 출품작 (작가 강요배)

1. 침묵 시대와 예술적 대응에 대해서

제주 4.3 사건은 1980년대까지 현실속으로 나오기에는 거의 불가능한 금기된 주제였습니다. '폭도', '빨갱이'라는 낙인이 찍힌 채 희생자와 유족은 물론, 관련 내용을 다룬 창작자들 조차 검열과 탄압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억압된 사회 분위기 속에서도 일부 문학가와 예술가들은 용기 있게 진실을 기록하고 표현하기 시작했습니다. 

대표적인 예시로 현기영의 소설 [순이 삼촌](1978) 입니다. 이 작품은 제주 4.3 사건을 정면으로 다룬 한국 문학 최초의 소설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 주인공 '순이 삼촌'의 시선을 통해 한 마을이 국가권력에 의해 파괴되고, 개인의 삶이 비극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세밀하고 처절하게 그렸습니다. 이 작품은 사건의 진상을 폭로 했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출판 후 금서로 지정되었고, 작가는 정부에 의해 구타당하는 고통까지 겪었습니다. 이후 수 많은 이들에게 제주 4.3 사건의 존재를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한, 김석범의 장편소설 [화산도](1989)는 재일교포 작가로서의 시선으로 제주 4.3 사건을 심층적으로 다룬 대작입니다. 그는 제주 출신 작가로 주로 일본에서 활동하였으며, 제주 4.3 의 참상을 방대한 서사로 담아 냈습니다. [화산도]는 단순한 역사 소설을 넘어서 민족과 국가, 이념과 개인, 기억과 망각의 문제를 통찰해 보는 철학적 소설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

 

2. 시와 시인의 증언에 대해서

소설뿐만 아니라 시 역시 제주 4.3 의 아픔을 표현하는 주요한 문학 장르가 되었습니다. 오랫동안 말할 수 없었던 슬픔과 분노는 시라는 형식을 통해 절제된 감정으로 표현되었습니다.

고은 시인의 [백두산] 연작이나 [만인보] 등의 대작속에서 제주 4.3 의 참상을 다룬 시를 포함, 이산하의 [한라산], 강정효, 김시종, 김지하의 저항시 등에서도 제주 4.3 을 은유적으로 다룬 시들이 존재하였고, 제주 언어와 감수성으로 제주 4.3 을 시 속에 녹여 내었습니다. 그들의 시에서는 한 마을의 집단의 파괴, 희생자들의 억울함, 남겨진 유족들의 고통이 사실적으로 간결하게 묘사되었습니다. 이러한 시들은 감정을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데에 강력한 효과를 주며, 독자들로 하여금 사건의 실체를 감정적으로 체험하게 만듭니다. 예술가들은 이러한 작품들을 통해 제주 4.3 사건의 진실을 알리고, 이를 기억하게 만들고자 하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3. 예술 작품 속의 제주 4.3 - 그림, 영화, 공연, 전시

문학과 더불어, 미술, 영화, 연극 등 예술 분야에서도 제주 4.3은 꾸준히 조명되고 있습니다. 특히, 화가 강요배는 자신의 그림을 통해 제주 4.3 의 고통을 시각화한 대표적인 예술가입니다. 그는 민중미술의 흐름 속에서 활약했으며, [한라산에서 백두산까지] 연작 등에서 제주 4.3의 현장을 재현했습니다. 그의 작품들은 단순한 풍경화나 인물화가 아니라, 역사의 잔혹감과 슬픔을 고발하는 시각적 기록입니다.

영화로는 오멸 감독의 [지슬 - 끊나지 않은 세월2](2012)가 대표적입니다. 이 영화는 실제 제주4.3 당시 토벌대의 진압을 피해 동굴로 피신했던 주민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은유적 연출과 뛰어난 영상미로 국내외 영화제에서 많은 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지슬'은 제주어로 감자를 뜻하는데, 이는 굶주림과 숨어 살아야 했던 당시 민중들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관객에게 단순한 역사 교육을 넘어서 깊은 정서적 울림을 주었습니다.

연극 또한 제주 4.3 을 전달하는 중요한 수단 중 하나입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연극 [어느 소년의 4.3], [순이 삼촌] 무대화 등은 관객에게 직접적인 감정이입을 심어주며, 현장에서 긴장감과 감동을 동시에 전달하였습니다.

 

4. 예술의 의미 - 기억, 치유, 연대

문학과 예술 속 제주 4.3 사건은 단지 사건을 기록하고 재현하는 것을 넘어서, 더 큰 사회적, 문화적 의미를 지닙니다. 

첫째, 기억의 복원입니다. 왜곡되고 은폐된 역사 속에서 잊혀졌던 진실을 다시 꺼내어 공론장에 올리는 작업은 문학과 예술의 중요한 역할입니다.

둘째, 치유의 과정입니다. 예술은 고통을 미학적으로 승화시키고, 희생자와 유족의 아픔을 공감과 애도로 연결해 줍니다. 비록 사건은 잊혀 가려고 했지만, 예술은 그 기억을 공감, 공유와 나눔으로써 치유의 문을 엽니다.

셋째, 연대의 가능성입니다. 제주 4.3 은 제주만의 일이 아니며, 국가 폭력과 이념 갈등으로 인해 억울하게 희생 당한 모든 이들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문학과 예술은 지역을 넘어 전국적, 세계적인 공감대를 가능하게 합니다. 국내외 전시와 번역된 소설들, 해외 영화제에서의 4.3 관련 작품 수상 등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제주 4.3 사건은 국가에 의해 철저하게 감춰진 비극이었지만, 문학과 예술은 그것을 끊임 없이 기억하고자 했고, 역사적 진실을 알리는데 기여했습니다. 소설, 시, 그림, 영화, 연극, 전시 등 다양한 예술 형식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제주 4.3 사건을 알리는 작업을 하였습니다. 억압된 진실이 자유로운 예술 표현을 통해 세상과 마주했을 때 우리는 단지 과거를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문학과 예술은 역사 앞에서 무력하지 않았고, 오히려 가장 깊고 오래 남는 기억의 통로이며, 진실을 향한 사람들의 가장 인간적인 저항입니다. 제주 4.3을 기억하고 오늘에 다시 새기는 일은 문학과 예술 속에서 계속되고 있습니다.